1. 글을 시작하며, 고등학교 시절 (자사고-독학 삼수-중앙대학교 부설 학점은행제-육군 군수-가천대 입학 - 중앙대학교 편입 이야기)
나는 2023년 3월에 처음 편입 준비를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시험준비에 돌입한건 1학기 종강 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6개월 정도 기간 몰입해서 중앙대학교 소프트웨어학부 편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전까지의 과정이 엄청나게 험난했고, 그 이전의 과정이 없었다면 중앙대학교 편입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98년생이고 한국나이로는 28살, 만 나이로는 생일이 지나서 27살이다. 군대에서 수능을 쳐서 가천대학교 금융수학과에 입학한것도 22학번이었고, 지금 중앙대학교 소프트웨어학부도 22학번으로 다니고 있다. 정상적으로 학교에 입학했다면 16학번? 17학번 이었어야 한다.
나는 편입을 시작하기 전 오래 전부터 편입학에 관한것을 알고는 있었다. 중앙대학교 부설 학점은행제에서 수업을 듣던 시절에는 무료였는지 10만원정도 내고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편입학원에서 강사를 데려와서 수학 강의를 학교 강의실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글 내용중에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듣다가 정신적으로 아니다 싶어서 그만두었었고, 군대에서 수능을 망친 뒤로 이전에 취득했던 학사학위를 이용해서 편입학을 볼수있다는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천대학교 다니는 내내 편입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편입 합격수기, 실패수기를 검색하면서 혼자 알아보기도 했었다.
나와 같은 케이스가 많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수능을 여러번 치는 시점에서 미련 접고 다른 길을 알아보거나 하는 것 같아서. 요즘 세상은 학벌로도 뭔가 보장되는 시절은 아니고. 막상 중앙대학교에 다니면서 계속 시험보고 더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생각이 복잡해진다. 혼자 지낸 기간이 너무 길어서인가? 20대 후반, 이제 30대를 눈 앞에 맞이하는 시점이 와서 그런가 더 생각이 복잡하다. 내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불가능한 정신상태와 몸상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얻는것도 있었다. 이전의 환경 그대로였다면 절대 몰랐을 것이다. 나는 평생을 우물 안에서 살아갈 뻔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지금의 나는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내 이야기를 학교에서 상담하는 사람에게 애매하게 풀어낸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라면 본인 상황에서 현명하게 공부해서 잘 이겨내길 바란다. 사실 나도 내 힘으로 이겨냈다기보다는 그 상황이 나를 이겨내게 만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상황을 만드는 능력이 생겼다. 글을 쓰면서 내 나름대로 설명은 하겠지만. 읽는 사람을 이해시킬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방법을 이해해서 유용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고등학생때는 글을 잘 썼던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 나는 다른사람의 책과 글을 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어쨌든 적어둔다. 그리고 나도 이제 털어내고 인생의 다음 막을 열고 싶다. 너무 긴 시간 마음고생한 탓인지 나는 합격했음에도 아직도 이 시절의 영향 아래에 있는것 같다. 삶의 고통은 끝이 없다. 다만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덜어낼수 있었다.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길 생각도 했지만. 편집은 할줄 모르고 지금은 시간이 없다. 그냥 글로 남겨두고 언젠간 이야기를 풀어둘 날도 오겠지. 내 머리가 너무나도 복잡하다. 예전에는 글도 더 잘 썼던것 같은데
## 어린시절 - 고등학교 - 독학 삼수
나는 오랜 시간동안 혼자 시간을 보냈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내가 항상 공부를 하면서 살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고. 내 부모님도 그런 기대가 있기는 했다. 다만 내 주변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교성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고 그냥 좁은 인간관계 안에서 즐겁게 살았던것 같다. 다만 어린시절부터 불안한 점이 있었다.
입시라는게 모두가 알지만 한번에 깔끔하게 최대한 원하는 학교에 가까히 붙는게 현명하다. 다만 그 시절에는 절대 모르는게 있다. 개인의 의지 부족일수도 있고 환경의 영향일수도 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공무원, 내 생각으로 막연하게 과학자 이런정도의 생각으로 진로설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는 과학 관련해서 영재교육 선발하는데 시험도 여러번 치뤄보기도 했다. 대부분 마지막 부분에서 떨어지고 한번 봤던 면접때는 이야기를 잘 못했던것 같다. 어린시절에는 책을 읽는걸 좋아했고 집에는 학습지 관련 일을 잠깐 하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책이 많았었다. 스스로 머리가 나쁘다는 생각은 안하고 살았다.
집 안에서는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을 했었기에 방에서 나오지 않고 그 책을 읽는것 말고는 할게 없었다. 부모님이 크게 케어를 하지 않았었고 나도 케어 받을만한 상황도 아니고 금전적으로 아주 여유로운 집안은 아니라는것은 눈치로 알고 부모님께 뭔가 사달라는 요구나 해달라는 요구 이런거는 어릴때부터 일체 하지 않았다.
어릴때는 아버지가 형제들과 밀치면서 싸우는걸 본 기억이 있다.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이 나이대부터 직감적으로 알았던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께 뭔가 해달라거나 그런 요구는 안하고 살았던것 같다. 사실 공부와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인데. 어쨌든 어린시절의 시기가 안좋기도 했고 내 부모님도 분명히 고생 많이하고 성실한 사람인것은 분명한데, 부모님의 고생이 나에게 악영향을 크게 끼친게 있는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많이 소심하기도 하고, 부모님의 기대로 초등학교 1~2학년때 5~6학년 나이대의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영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흥미가 공부에 끼치는 영향이 정말 큰것 같다. 시험준비하는 사람들은 이걸 많이 잊어버리곤 하는데 어쨌든 짚고 넘어간다. 내가 관심이 없어도 시험공부 하는 사람이라면 그 과목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를 속일수도 있어야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가던 시기에 잠깐 집 근처 공업고등학교에 갈까 생각하던 시기가 아주 잠깐 있었다. 내 성적은 그 당시 40%대였는데 영어 성적이 아니었다면 10~20%까지 올라갔을거라고 생각된다. 내 아버지는 공업고등학교에 갔다가 자퇴한 경험이 있었고, 그 이후 검정고시 치르고 혼자 공부하면서 삼수로 광운대학교에 입학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절 아버지의 반대로 자사고에 원서접수해서 뽑기로 붙어서 자사고에 입학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몰입하고 최선을 다해 성적을 올린다는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영어 성적이 많이 낮을거는 예상했지만 수학 첫 시험때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긴장해서 시험도중 목 뒷부분이 땡기면서 아프고 집중을 못하는 경험을 했었고, 그 이후로 수학 성적이 계속 낮았다. 한번 학교 시험을 잘못 치르니까 학원에서 보는 시험 점수도 점점 낮아지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때 학원을 2번정도 바꾸다가 학교 수학점수가 낮아서 대치동 은마상가 방 한칸에서 수업하는 나이많은 강사에게 성적으로 부모앞에서 무시당하는 경험도 했었다.
어린 나이에는 공부에 대한 고민만 있을수는 없다. 중학교 졸업하던 시기쯤에 짝사랑을 하기도 했었고, 어린시절 순수한 마음에 학원 끝나고 매일 그 여자아이가 다니던 학교 근처 길쪽으로 돌아서 한참 걸어서 집에 가기도 했었다. 집안 사정도 그닥 좋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정도로 부모가 조급해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 당시에 나는 하위 50%컷으로 잘라내고 그 위에서 추첨을 받는 방식으로 강남의 자사고에 입학해서 다녔다. 중학교때부터 집안사정 문제로 학원은 수학학원만 다녔고, 고등학교 1학년때는 용돈이 없어서 친구들이 학교 끝나고 1학년 학기초에 뭔가 사먹고 가자고 할때나 노래방 가자고 이야기할때 다 거절했었다. 어릴때부터 부모님이 정기적으로 용돈을 주거나 이런 관리가 잘 안되는 상황이었고, 학원 수업중 잠깐 먹는 밥도 대부분 천원짜리 삼각김밥이거나 이천원짜리 햄버거 위주로 먹었던것 같다. 소심하고 자기관리도 똑바로 안되는 학생이었고 식사와 생활습관 모두 엉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태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앉아있는것 자체가 웃기는 일인데 내 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다만 모르겠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내 의지를 가지고 나를 고치려는 노력을 여러번 하고, 다른 학생들이 플래너 작성하고 자기관리하는걸 옆에서 보면서 따라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금방 바뀌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 결국 자신의 의지가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지는게 안된다면... 나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에 집안사정으로 다니던 수학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당시에 성적이 20점정도 올랐었는데, 학원비가 내가 보기에도 꽤 많이 나왔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쨌든 좋은 성적은 아니었기에 그만두게 되었다. 내 부모님은 과목별 점수가 어떤지 따질만한 상태도 아니었고, 부모님 나름대로 절약하고 고생하면서 살고 있었기에 그런걸 신경 쓸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다만 다른 부모는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 있거나 요즘 같으면 그냥 인터넷 강의 끊고 책 사서 혼자 공부하면 되는 일인데, 내가 혼자서 찾아볼만큼 공부에 흥미가 있지는 않았던것 같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안타깝다. 공부를 잘하는 학교였고 내신 문제는 내 수준에서 풀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지금 봐도 어려운 문제기는 했다. 학교 분위기는 대부분 정시로 대학에 진학하는 분위기였는데 학생들 대부분 성실해서 내신 준비도 열심히 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말에 생활습관이 망가져서 집에 있던 저금통을 깨서 피씨방에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었고, 고등학교 2학년 가을까지 집의 낡은 노트북을 내 방에 가져와서 2~3시까지 게임을 하다가 머리가 아파서 그대로 쓰러져서 잤었다. 부모님이 와이파이를 끊은 뒤에는 마인크래프트 1인 맵을 받아서 혼자 하면서 시간만 때우다가 다음날 7시에 일어나서 성실하게 학교에 갔었다. 학교에 지각은 절대 안했지만 생활습관이 망가진 뒤로 수업을 정상적으로 들을수가 없었고 이때 영어 내신 8등급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시험은 단 한문제도 찍지 않고 시험내내 열심히 시험문제를 노려보면서 고민하다 찍었었다. 자존심이 있었던걸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집안에 아버지 형제중 나이 50정도 먹고 방안에서 계속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어릴때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그 뒤로는 뭐 하고 살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부모님은 내가 게임하는걸 병적으로 싫어했고, 초등학생때는 친구들 따라서 피시방을 가면 집에서 집안을 뒤집어 엎고는 했다. 중학교때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게임도 잘했고 공부도 잘했었다. 나는 공부를 아주 못하지는 않았던것 같은데... 그때는 휴대폰도 2G폰이었고, 집의 컴퓨터는 램이 256메가였다. 친구들 다니던 피씨방에 따라가서 처음 접했던 롤은 집 컴퓨터로는 할수가 없었다. 어떻게 몰래 구한 돈으로 1년 게임해서 랭크게임을 할수있는 30레벨을 찍고는 고등학교 1학년중에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계정을 지웠었다.
그렇지만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 어울리지도 못하고... 뭔가 붕 뜬 상태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학교생활을 했다. 학교생활이 잘 안풀리니까 더이상 얼굴을 못보는 중학교 졸업 시절 짝사랑 하던 사람에 대한 미련도 있고, 그래서 그때는 페이스북에 이름을 검색하면 사람을 찾을수 있던 시절이라서 검색해보면 내가 다니던 학교 동아리와 활동한 사진도 나와서 더 씁쓸하고... 혼자 많이 울기도 했던것 같고 수없이 자신을 괴롭히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집에서 낡은 컴퓨터로 인터넷 없이 게임하던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일종의 자기학대였다. 이때는 인터넷 방송이 유행하던 시기가 아니었는데 인터넷이 통하면 낡은 아이팟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걸 듣는 재미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아이팟은 여동생이 어디서 구해온거였는데 집에 멀쩡한 전자기기라는게 그런것밖에 없었다. 낡은 기기로 할 거리를 찾다보니 이상한 재주도 많이 생겼었다.
그러다가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에는 중학교시절 선행학습할때 썼던 수학의 정석과 개념원리 수학책이 있었다. 9월의 어느날 갑자기 새벽에 낡은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던 시기에 노트북 충전 선을 가위로 자르고 마우스도 망가뜨리고 a4지에 수학 개념 내용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수학과목 개념내용은 지금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았다. 작은 글씨로 다 썼을때 a4지를 모았을때 2cm정도 되는 두께였다. 그런데 학교 수학익힘책 문제를 풀수가 없었다.
내 담임 선생님은 젊은 수학선생님이었다. 선생님께 가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 되는지 물어봤고 지금 생각해봐도 엄청나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조언을 받았었다. 그냥 당연한 조언이었다. 선생님이 평판이 좋기도 했고 내가 다른 어딘가에 의존할 구석이 없었다. 반에서 나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지만 불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과 조금 다른 특이한 입장이기는 했다.
막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다시 마음을 먹었을때 내 옆자리에는 약간 뚱뚱하고 안경쓴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1학년때는 수학이 5등급 정도 나왔던것 같은데 2학년때는 1~2등급 정도 나오는것 같았다. 그 친구 옆자리에서 어떻게 문제 푸나 계속 지켜보다가 나중에는 하루에 몇문제 푸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았다. 그 친구는 3학년때는 수학은 1등급 성적대를 받은걸로 알고 마지막 기하 내신은 100점을 받고 마무리한걸로 기억한다. 다른 학생들이 인간승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도움을 받은걸 넘어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 것을 보면서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이 친구가 하루에 100~120문제를 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그정도 문제를 풀려고 해보기도 하고, 똑같이 노트를 사서 반 접어서 보기도 하고 문제를 그대로 잘라서 오답노트 만들어서 다시 푸는걸 따라해보기도 하려고 했는데, 그 친구는 학원에서 프린트해준걸 잘라 붙인거고, 나는 문제집을 잘라야되는 입장이라 내 생각대로 안되어서 오답노트는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지금이라면 패드를 이용하면 오답노트 만들기는 쉽겠지만... 이 친구는 서강대를 입학했고, 나는 입시결과가 나왔을때 재수를 안할거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가 왜하냐, 절대 안한다 이렇게 대답을 했었다. 그 당시에는 이걸 이해를 못했었다.
3학년 초까지 공부하겠다고 발버둥치는게 유지가 되기는 했는데 내 생각대로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고, 여러 과목을 공부하는 부담이 컸다. 그때 화학1 물리2를 탐구과목으로 골랐었고, 3월에 물리2 45점, 4월에 화학1 45점을 받기도 했었다. 교육청 모의고사라 큰 의미는 없지만 공부가 궤도에 오르는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한 과목이 오르면 다른과목이 너무 심하게 떨어지고, 이 당시에 영어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중학교 문법책을 하나 가져와서 보면서 공부했는데 남들 앞에서 보기가 쪽팔려서 혼자 학교 자습실 구석자리에서 보고 여러 시도를 하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졌었다.
다른 사람의 경우 어느정도 성적대를 받으면 어느정도 학교를 갈수 있다는걸 알수 있었던걸까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당시에 그런 정보도 없고 고등학교 3학년 당시에는 수학학원을 어머니의 먼 친척을 통해서 잠깐 다니다가 말았었다. 그 뒤로 계속 혼자서 공부를 했었는데 목표가 막연하게 잡힐수밖에 없어서 그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가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내 부모님도 집에서 거리가 멀거나 어느정도 이하 대학은 그냥 못보낸다는 마인드였는데, 부모님이 정한 선도 애매했고 나도 어느정도까지 성적을 명확히 올려야 되나 잘 몰랐고 최대한 잘 받아내야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공부하다가 지쳤었다. 3학년 초에 어떤 의대생한테 잠깐 과외를 받기도 했었는데 이때 왜 그만두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때 모 강사 구문강의 하나를 20만원주고 부모님이 결제했던 기억도 난다. 완강은 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답답하다.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패스 강의 하나 끊고 독서실 비용과 교재비, 식비 이정도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할수 있을텐데 참 답답하다.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그냥 수능을 잘 보면 된다. 수시 비율이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보다 높은것 같은데, 그래도 정시로 대학가야만 하는 학생이라면 그냥 단순하게 수능을 잘 보면 된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다른 생각을 안하면 된다. 이게 쉽지 않은 일인걸 알지만... 그리고 나는 결국 실패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에 치뤘던 수능은 35543 이정도의 성적대로 마무리했던걸로 기억한다. 내 생각보다 국영수는 1~2등급 낮게, 탐구는 2~3등급 낮게 받았다. 이미 9월 모의고사 치를때부터 공부에 손을 놓은 상태였고 당연한 결과였다. 만약 이 시기로 돌아갈수 있다면 가천대정도 대학이 치르던 적성고사나 논술 관련 준비를 더 해봤을것 같은데 부모님이 금전적으로 지원해주거나 이런건 없었고 정보도 없었고... 최저가 없던 건국대 한양대 논술 두번 치르고 말았고 정시 원서는 접수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부모님이 어떻게 할건지 물어봤을때 나는 혼자 공부해서 수능을 치르겠다고 이야기했고 부모님도 별로 대화하고 싶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집안 사정상 비용을 감당할수 없다는걸 알았기에 나도 고의적으로 그렇게 대답한 것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잘 적응하지 못하고 엉망으로 자사고를 졸업했던것도 답답했고 그냥 1년정도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1년정도 쉬었다. 그리고 수능을 봐서 기억도 안나는 점수를 받았고
다시 1년 시간보내고 다시 수능을 봐서 대학을 못갈 점수의 성적을 받았다. 수학은 7~8등급 받은걸로 기억한다. 2년의 기간동안 집 밖에 거의 나가지도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고 밤낮도 뒤바뀐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고, 나는 내 부모님이 이 시절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정말 궁금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었는지. 공부라는것이 결국 내 의지가 중요한것은 맞지만... 이때는 어디부터 잘못된것인지 따질 기운도 없었고, 삼수하던 시절에 부모님이 밥먹을 돈을 안줘서 싸우고는 처음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었다. 알바 사장은 나보고 공부 잘할것 같다 이야기를 했지만 뭘 보고 그렇게 이야기한건지 그게 칭찬인건지도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일은 아주 열심히 했고 거의 지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경력이 없는 상태고 그 시절에 알바는 미필 남성의 경우 거의 하기가 어려웠다, 별로 하고싶지는 않았지만 주간 야간일을 같이 할수밖에 없었다. 알바 하면서 수습기간으로 처음 3개월은 90%의 월급만 지급받았고 주휴수당 야간수당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 편의점은 강남역으로 내려가는 오르막길 위쪽의 양재역에 있었는데 근처 편의점중 가장 작은 크기였다. 지금은 운영을 안하고 있다.
야간 알바를 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서 일하다가 졸기도 했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었다. 폐인 생활을 하면서도 결국 공부말고 스스로 할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왜 그랬을까? 몸도 약하고 성격도 소심해서 그랬던걸까? 주위에 사람도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때 같은반이었고 밤새 게임하고 낮에 장난치면서도 공부를 꽤 잘해서 한의대와 연세대에 간 두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내가 재수할때까지도 연락을 해줬었다 그런데... 내가 공부를 똑바로 하는 상태도 아니었고... 그래서 내가 지금 상태가 안좋으니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처음으로 해본 야간 알바는 고독하고 힘들었다. 근처에 아웃백 매장이 있고 호텔도 있는 위치였고 아마 지금도 있을텐데 가끔 외국인이 오기도 했다. 상품 진열을 하다보면 피부에 안좋은게 있는지 팔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일을 오래 할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꽤 오래 버텼다. 알바를 하면서 야간에 틈틈히 공부를 하겠다고 이야기해서 허락을 받았었고 실제로 조금 공부를 했었다. 그런데 오래 가지는 못헀다. 너무 지쳐서 꼬박꼬박 졸았고 밤낮이 바뀐 시점에 공부를 잘 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필에 키도 작고 할수있는 일도 없고 성격도 소심하고 정말 숨만 쉴수 있던 입장에서는 할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고 한달 일해서 60만원 받은 돈으로 책 사는데만 쓰다가, 수능이 가까워지는 10월쯤에 다시 알바를 그만두고는 책사는데 조금, 몰래 피씨방 다니는데 조금 돈을 쓰다가 수능을 맞이했었다.
수능을 치르는 학생이라면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른 방법으로 탈출할 생각을 하면 안된다. 그냥 패스 끊고 교재 사서 공부할수 있는 공간에서 몰입하면 된다. 다만 20대 초에는 나는 이게 잘 안되었던것 같다. 왜 그랬는지도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여러 요인들이 섞이고 정신적으로 지쳐서 실패할수밖에 없었다. 이게 부모의 책임도 분명히 있는데... 고등학생 이후로는 공부를 못하면 개인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변명 하기도 힘들다.
다만 목표를 낮게 잡을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글에 적겠지만... 군대에서 치른 수능으로 가천대를 가야만 하는 성적이었을때는 솔직히 자살하고 싶었다. 내 인생이 너무나도 숨막히고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목표가 조금 낮아도 그냥 학교에 다닐수 있었더라면. 늦게 치른 수능으로 가나다군 셋다 정시 원서에 가천대를 작성하고 추가합격으로 붙은 과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께 이야기 했을때 아버지는 학비를 대줄수 없다고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그냥 다녀봐라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부터 그냥 목표를 낮게 잡고 적성고사를 치뤄봤더라면... 누군가 그런걸 알려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고등학교 시절 주변 사람들의 목표가 다 높았고, 나도 목표를 높게 이야기했고 실제로 성적으로 높게 올려야만 한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금방 오르지는 않았다. 그 당시 눈에 띄게 오른 과목이 있었고 완전 밑바닥에서 성적을 올린 사람이 몇 없어서 칭찬받기도 했었다. 다만 물리학자가 되려면 한양대 밑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약간 좌절감도 있었고, 어느정도 올려야 하는가? 몇문제 더 맞춰야 하는가? 얼마나 어떻게 더 공부해야하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이 해소되지 못한 상태로 공부를 했었다. 수능을 치르는 사람이라면 그런 분석을 하면서 공부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런 분석을 하기가 더 쉬울거라고 생각된다.
삼수를 망친 뒤에 아버지의 제안으로 중앙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이때 숭실대학교 평생교육원 면접도 봤었는데. 나한테 전화온 사람이 이상한걸로 화를 내길래 이해가 안가서 끊고 중앙대로 갔었다. 아마 숭실대에서 연락온 사람은 학점은행제 플래너 일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능력이 없고 보잘것 없는 사람이 되면 온갖 질적으로 낮은 사람이 꼬이게 되어 있다.
쓰다보니 간략하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2년간 내 나름대로의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다 인터넷으로만 사람을 접하면서... 그 안에서 배신당하는 경험도 있고 혼자 답답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내 처지를 보면서 씁쓸한 경험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아주 천천히 지나갔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젊음은 아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이 시절에 나는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고, 이미 노인과 다를게 없는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 뒤에... 도전정신이 생기고 다시 젊음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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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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