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이고 혼자 보관해두었던 글이지만
## 1. 군생활 회고
근무중에 떠오르는대로 적어놨던 글이다. 옆에 이면지에 대고 볼펜으로 막 적어놨었다. 난잡한 글이지만 옮겨둔다.
긴 시간 보내면서 느낀것...
군 시설 자체가 신기했다. 다른 대대도 세군데 정도 돌아다녀본 경험이 있는데. 경기도 지역인데도 이렇게 큰 땅자리에 조금씩 부대가 있다는게 신기했다. 그 부대에 그만큼 병사가 채워진것도 신기한 일이고. 대신 군 업무나 체계 이런건 단 한번도 신기하게 느낀적은 없다. (모든게 구식이고 업무도 잡일뿐이었다.)
논산에서는 자격증, 재학중인 대학교 등 여러가지로 조사하는 시간이 있었고, 특기 분류할때 통신병이 되길 간절히 바랬지만, 이제와서는 다른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실망감도 크다. 통신병으로서의 군 생활이 끝나가는 지금. 보직을 선택할수 있다면 1순위는 의무병, 2순위는 운전병. 통신특기는 탈락하고 행정특기를 받은걸로 기억하는데 통신 필기시험을 잘봤던걸로 기억한다. (순서도 문제였다. 필기시험 마치고 회로도를 보여주면서 뭔지 아나고 물어봤었는데 대답을 못해서 떨어졌다.) 만약 행정병이 된다면 힘들었을듯, 성격때문에 와서도 고생했고 지금 행보관 같은 사람 상대는 도무지 못할듯 싶다.
훈련소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처음 총도 쏴보고 포복도 해봤다. 코로나 세대중에서는 가장 격식 맞춰서 한듯 싶다, 화생방은 가스는 안마셨고, 내 선임도 그정도 한 경우가 많고, 늦게온 동기나 후임은 각개전투, 화생방 등 거의다 생략하고 1~2주씩 격리하고 온 경우도 많다. 총한번 못쏘고 온 애들도 있다.
내 군생활 시작할때 코로나가 막 시작되어 난리였고, 뉴스에 몇십명 단위로 보도가 나왔었는데 지금은 천명을 넘어서 만명 단위가 되었으니... 이 시기를 노리고 입대한게 아니라서 마음이 복잡하면서도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훈련소는 다들 같은 처지여서 그런지 서로 잘 대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가장 나이 많은줄 알았는데 25살, 24살, 26살, 29살 2명 같은 분대 사람들이 이렇게 나이가 많았다. 29살에 생물학 박사 마치고 의무병 입대한사람, 꽃꽃이하고 20살 여자친구 사귀다가 입대한 25살. 랩하다가 입대했다는 24살, 음악하다가 입대했다는 29살, 30살 교사 여자친구가 있던 26살... 한동안 사람을 안만나다가 그런 환경에 들어가게 되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점잖았고 밖에서 하던일 이야기 반에 여자이야기 약간에...
다들 착했는데 내 옆자리던 25살짜리는 별로 나를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20살 여자친구 사진을 벽에 붙여 놓았었는데, 조교들이 관물대에 사진 붙여놓는걸 지적하고 싶어하는 눈치도 잠깐 보였는데 분대원 전체적으로 성실하고 좋은 평가를 받아서 많이 봐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여러사람 말 붙이는 성격도 아니었고, 조용히 있으니까 신경써줘서 고마웠다, 내 개인에 대한 아쉬움으로는, 너무 아는게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고, 군대가서 할 일(주특기)을 신경썼다면 면허도 따고 공부도 더 했을거다.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이때 처음 했다. 이전에 여러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다가 사람들과 강제로 접하게 되니 뭔가 트이는게 있었다. 자대 배치받고 오는날, 통신병으로 지원해서 온 내 한살위, 개발자 일하던 사람과 기차를 10분정도 같이 탔다. 이 사람은 세종시쪽에 있는 부대로 갔는데 여기에 무슨 부대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뭘 더 배우면 되는지 이 사람에게 물어봤었는데 내 학력이나 가진 자격증이나 보잘것없었다보니 얕보이기라도 한건지 큰 도움이 되는 대답은 안해주더라. 더 대답해줄게 없었을수도 있고... (뒤늦게 첨언하자면 의미있는 대화를 할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자대 와서는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건물도 낡았었다 (다른 부대도 이건 비슷할거다. 내가 봤던 건물들 대부분 낡았었고, 새로 지어봐야 컨테이너 위에 뭘 씌워놓은 비슷한 건물들뿐이었다)
분대 안에서 편제가 바뀌어서 내가 자대 전입왔을때 사람이 엄청 많았다. 당시 선임들에게 구형 장비 인수인계도 받았는데 그 이후 한번도 써본적이 없다. 적당히 알려주고는 분위기 잡으면서 물어보고, 모르면 화내고 그랬는데, 처음에는 고분고분 배우다가도 일이 생길때마다 힘들때가 있었다. (간부들이 이런 작은 마찰까지 통제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지나치게 무심했고 오히려 군생활 기간이 긴 선임이 간부와 친해서 그 분과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수준도 낮고 군생활 하면서 자동으로 얻어지는 계급에 심취한게 보여서 나쁘게 봤었는데. 밖에서도 특별히 의미있는 뭘 하다가 온 애들은 아니었다. (사실 대부분이 이런 부류.) 군대에서 지역, 학력, 학벌에 대한 선입견이 더 생겼다. 대구 구석에서 온 내 위에 선임도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게 속터지고 나보다 말도 어눌하고 씻지도 않는 사람이라 힘들었다. 남이 보기엔 나도 답답한 사람이었겠지만… 내 시선에서 본 사람들은 이랬었다.
같이 온 동기들이 내 부족한 면이 커버가 되나 싶으면서도, 한놈은 부모가 훈련 전에 부대 라인(게시판)에 힘든거 시키지 말라는 식으로 이상한 글 써놓는 경우도 있었고 (이놈은 일병때 나와 내 동기에게 밀려나서 다른 보직을 잠깐 맡았다가 통신간부 앞에서 울어서 나를 밀어냈었는데, 얘가 나중에 일 못한다고 까여서 다시 흐지부지 되었다. 전역 전에 이놈한테 뒤통수를 맞고 분대 안에서 분위기가 안좋았는데 통신 간부가 나에게 말해주더라. 전입 초기에도 불안증세 완화하는 약을 먹었다는데 난 군생활 내내 이런놈인줄 몰랐다.), 한놈은 군생활 초기에 선임들이 다른 일로 빼버려서 다른일을 하러 다녔고, 한명은 외국에서 왔다는데 백신맞은뒤 병원 여러개 옮겨다니다가 의가사 전역 실패하고 공익으로 갔다.(백신 부작용으로 뉴스에 한참 나올시기라 상급본부에 계속 얘 몸상태 어떤지 보고가 들어갔었다.) 처음에는 사교성 좋고 나보다도 늦게 군대에 온 사람이라서 동기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의지했었는데, 정신이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자란 애들이랑 성격이 너무 심하게 달랐다. 처음에는 상담병 자리 등 여러가지 휴가를 다 챙겼었는데, 나중에는 안좋게 부대에서 나갔고, 휴가도 다른사람에게 넘어갔다.
분대원 개인의 성향을 제외하고서도 일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컸는데. 내 개인 공부하는걸 경기도쪽에 중국어과 다니던 선임이 나보다 공부잘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저렇게 공부하느냐고 뒷담을 하거나, 특별한 일 없던 시간에 상병은 자도 괜찮은데 일병은 왜 쉴때 자냐고 시비를 걸지를 않나. (누군가는 이런걸 당연하다 여길지 모르겠다만 군 생활이라는게 이렇게 서로 미개하게 굴어야될 일인가 싶었다. 당시 평판 좋던 모 간부도 옛날에는 더 심했다는 말을 가끔씩 내뱉던 사람이라 똑바로 통제도 안되는 상태였다. 일 없으면 쉬는걸로 뭐라고 하는 간부가 아무도 없었는데…) 정말 이 미개한 애들이 서로 에이스 노릇하려고 들어서 더 힘들었다. 간부들 마인드도 시키는 일만 돌아가면 밑에서 무슨 일이 터지든 소란만 없으면 된다는 식이라 힘들었다.
서로 감정이 쌓여서 한번 시비가 붙었는데. 처음 왔을때 내 분대에 있던 상병 4명, 이 애들이 일과집합 시간에 운동기구 끝에 달린 플라스틱을 던지면서 장난치다가 후임에게 맞추고는 뻔뻔하게 쳐웃다가, 내 눈앞에도 날아가서 옆으로 힐끗 봤더니, 그걸로 한놈이 발끈해서 나한테 지금 째려본거냐고 물었었다.
기가 차서 간부 앞에가서 대화하자고 하고. 중재를 요청하고 계속 이놈이 뻔뻔하게 나오길래 서로 소리가 커져서, 이후 중대장실에서 따로 상담을 했었다. 그 상황이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1대1 상담중 울었고 말도 능숙하게 하지 못하고 내 잘못이 아닌데도 당당하지 못하고 자책을 했었는데. 전역 2달 앞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씁쓸한 일이다.
당시 나에게 발끈했던놈 체격이 나보다 큰것도 아니었고 (나도 작은 체격이긴 하지만) 사회에서 뭐 하다가 온놈도 아니었고 주특기도 엄밀히 따지면 다른 애라서 서로 접하고 문제생길일 자체도 없었는데. 쳐다봤다고 발끈한 상황 자체도 황당했고 이놈이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싶었었다.
간부 앞에서 중재를 요청했을때 나보다 두살 어렸던 이놈이 "야!" 하고 소리를 치길래, 당시 조용하게 지내고, 평소에 동기들 사이에서도 욕한마디 안하고 살던 내가 "야?" 하고 노려보면서 조용히 쳐다봤는데 이때 이것때문에 하극상이니 뭐니 헛소리를 들어야했다. 어이없는 일을 겪고 이날 밤에 근무갈때는 볼펜으로 자는애 눈을 찌를까 싶은 생각도 충동적으로 들었는데 참았다. 당시 내가 찾아갔던 간부가 평판 좋은 사람이었고, 그걸 알고서 일부러 그 앞에서 나도 맞대응한거라 처벌같은건 없었고, 선임들 잘못인걸 간부가 알아서 보고만 올라가고 말았다. 다만 대대장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가서 회의중 장교들이 다 알게된건지 몇명은 보는 시선이 달라진게 티가 났었다.
당시에 밝게 지내던 편은 아니었는데 이 사건 이후에 정훈장교가 와서 내 근무중 개인이 쓰던 수첩을 뒤져보는 등 나에게 감시하려고 드는 사람이 있었다. 이 뒤로 이 집단에 완전히 정을 떼고, 신병휴가때 자격증 시험봤던게 잘 되지 않아서 할게 없었는데. 다시 수능시험을 준비해봐야겠다 싶어서 11월까지 쭉 공부하고 시험을 치뤘다. (나중에 들은거지만 이 정훈장교는 국회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짜증스러워서 어느정도 그 상황에서 나에게 우호적이던 선임 몇명에게도 그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안했고 그 뒤로 매일 연등시간에 하던 내 공부에 빠졌던것 같다. 내 바로 위에 선임 몇명은 당시 그 동기라인에게 당한게 있어서인지 잘했다며 내 편을 들어주긴 했는데. 그 상황까지도 부담스럽고 기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일을 꾸준히 마음잡고 하던 성격은 못되고, 오래 전 일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엔 완전히 공부에 손을 놓고 지냈는데. 그 부대 안에서는 사람에게 정을 뗀 덕분에 공부에 어느정도 몰입이 되었다. 다만 시험 자체는 잘 보지 못했고 완전히 밑바닥에서 전과목을 궤도에 올려놓기에는 요령도 없었고 시간도 부족했기에 이과(통합수능이였지만)로 경기대 성적 정도의 대학밖에 가질 못했다. 시험 자체도 오랫동안 안좋은 기억으로 남았었고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한것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쉽다. 시험이라는 것이 지능이 아닌 훈련의 문제라는걸 너무 늦게 깨달았고, 고등학생때, 20대 초반에는 정신적으로 그런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다른 방향의 고민이 많았고, 내 멘탈을 케어해 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 몇년간 혼자서 지냈으니…
내가 조금만 더 사람 대하는데 능숙하고 다른사람이랑 잘 친해졌으면 이런일이 없었을텐데... 싶기도 하고. 나이 무관하게 군생활 내내 깍듯하게 대하고 존댓말 쓰려고 난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일 가르치는 선임들 4명이 서로 말 다를때도 있고, 알려주지도 않은걸 다른 선임거 참고해서 했더니 그걸 또 분위기를 잡으려고 들면서 지적질하고. 나중에 분대원 13명이 한 생활관에 있을때는 나이 두세살씩 많은 후임들이 몇명인데 사회생활 운운하면서서 꼰대질까지 하는걸 들으려니 속이 많이 쓰렸다. 모든 부대가 이렇지는 않을것이고, 나는 내 공부하느라 후임 터치도 안해서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지만... 이 바뀌는 과정도 참 험난했고 동기들이 적응하는 와중에 내 공부에 올인하는 과정 자체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낯선 환경에서의 고난이었다.
단순히 늦은 나이에서의 도전이 아니라 삶의 의욕이 없이 지금까지 몇년을 폐인같이 보냈던 나 자신에 대한 패자부활전이었고, 나를 얕보는 뭣도 아닌 애들 상대로 하는 일종의 복수극이었다. 결과가 완전하지 못한것이 너무 속이 쓰리지만... 의미있는 경험인것은 확실하다. 밖에 나가서도 계속 배우고, 돈을 모으면서 내 삶을 꾸려나가면 되니까.
당시 군대에서 마찰이 이것만 있었던것은 아니다. 같은 분대 안에서 일이 있기 전에도 다른분대 선임과 또 마찰이 있긴 했는데. 말하는게 너무 더럽고 일 가르쳐주면서도 움직이지를 않으려하는데 px병이라서 참 대하는것도 골치아팠다. 사실 이런애가 군생활에 가장 적성이 있는애라고 보면 된다.
내가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든것에 이 사회와 국가에도 책임이 없다고 볼수는 없겠지. 입대 전도 문제였지만, 군대에 입대시킴으로서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내가 당시에 마음을 굳게 먹고 여기까지 살아온것이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 2
여기까지가 당시에 적어놓은 글이고
군생활 전체를 길게 적으려고 했던것 같은데 근무시간중에 짧게 적어두고 말았던것 같다. 이제 복학신청 앞두고 있고. 아직도 고민이 많다. 군생활하면서 전역후 사회에 던져지면 골치아플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걸 좀 덜어내기 위해서 군대에서 다시 공부했던건데 나와서도 골치아프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데 성공했다면 좀 마음이 나았으려나. 이미 나이는 한참 늦었고 최근 몇달은 현실도피 하면서 다시 예전처럼 지냈다. 이미 몸상태도... 나 스스로가 몸을 망가뜨리는 성격인지 식사도 똑바로 안하게 되고... 예전보다 잠은 많아졌다.
군생활 내내 똑바로 잠을 못잤다. 자다가 근무에 늦는애들도 꽤 많았지만 나는 누가 생활관 문만 열어도 놀래서 깨는 성격이었고. 이병때는 생활관에 열명이 넘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한시간 단위로 잠에서 깰때도 많았다. 피로가 쌓여서 내 근무시간대가 아닌데도 착각해서 군복으로 환복하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때도 꽤 많았다. 병장이 되어서도 잠은 금방금방 깼다. 누가 건드리기 전에 문만 열어도 잠이 깨는 경우가 많아서 불침번서는 사람이 놀라는 일이 많았다.
군생활 내내 오후시간 휴대폰 받으면 바로 사지방에 가서 인강듣고 공부를 했다. 잠깐 유튜브 보고 뉴스 보고 이럴때가 있긴 했다. 딴짓하는시간도 합치면 꽤 많았겠지만 기본으로 공부를 하면서 지냈다. 연등시간 10시부터 12시까지도 근무시간에 안겹치면 무조건 공부를 했다. 항상 12시에 잤고 중간에 근무때문에 한시간 깨서 지통실 근무서고 다시 자고... 500일 내내 의도치않게 5시간 자면서 생활한 셈이다.
여름에는 비가오면 통신 장비를 꺼야되서 2~3시간정도 우의를 챙겨입고 비맞으면서 장비를 끄러다녀야 했다. 부대 전체를 돌아야되서 피로도 심했고 근무 시간이 따로 있으면 3시간도 못자는 날도 두번정도 있었다. 초과근무 써서 나중에 쉴수는 있었지만. 당시 중대장이 휴식, 근취 챙겨주는거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였고, 선임들도 많이 없던때라 그냥 숨어서 자고 말았았는데 그닥 친하지는 않았던 선임이 가서 근취 허락을 받아왔다. 중대장이 전역 앞둔 중위였는데 중대 내 평판이 안좋았다. 왜 안좋았는지 난 조금 늦게 알았다. 물론 사람이 나쁘다기보단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처부 간부가 일 잘하는 사람이라서 단순하게 만들수 있는 일은 계속 개선해서 점점 편하게 만들어주긴 했지만 군 생활 내내 바꿔도 시설 낡은건 끝이 없더라. 항상 공사중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좋은 사람이고, 전역 전에는 통신차량에 항상 조수처럼 따라다녔다. 다른애들이 일을 할줄 모르기도 했고, 할 사람이 나밖에 없기도 했다. 그냥 전선꼽는 잡일이라서 일을 할줄모른다는 말 자체가 웃기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다른 부대에 가거나 통신차에 타는걸 좋아하는 눈치라서 당시에 간부들이 신경써준것일지도 모르겠다. 선임과 마찰이 있을때, 그때는 처부 간부랑 별로 친하지 않아서 앞으로 그러면 안된다고 쓴소리를 들었고, 나도 알겠습니다 하고 말았는데.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게 될줄은 몰랐다. 다만 전역 후에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을때는 너무 뜬금없는 질문을 해서 나도 좀 시큰둥하게 대답을 했고, 그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더 잘 인사하고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코로나때문에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간부들도 절반 잘라서 교대하면서 일할때라서 통신과에서 내 이름만 지우고 나왔다. 부담스러운 전화이기도 했지만. 내가 요령이 없는것도 맞다.
내가 전역하기 직전에는 사람이 없어서 근무 사이클 돌리는것도 벅찬 상황이었고, 기존 근무자로 감당이 안되서 주간 근무가 없던 다른 보직 근무자까지 끌어와서 지통실 근무를 시켰다. 처음부터 이랬다면 내 공부시간이 좀 더 있었을텐데...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 더 힘들거고. 지금 시스템 유지하긴 힘들거다. 밖의 사람들은 모를거고 이해하는데도 아마 한참 걸릴거다. 쫄병들만 죽어나가는거지. 오늘 서울대 수학과 다니던 학생이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수 있다. 어느 대학 다니는지는 사실 중요한게 아니다. 군생활 하면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으면...
군생활 해보면 알겠지만 본질은 저임금으로 사람을 일정기간 부려먹는거다. 공익이나 현역이나 이건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좋게 보기는 하나? 나라 지킨다고 노인네 몇명이 좋게 봐주는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애국심팔이가 몇백년까지 먹힐거라고 생각하나. 이제 정말 선진국이 되어야지...
군생활중 사지방에서 타 중대 애들이 공부한다고 뒷담까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중 두명도 같이 수능보는 사람이었다. 한명은 수의대생이고 한명은 인천대 컴공이었는데 같이 공부하는 입장에서 왜 다들리게 뒤에서 뒷담을 까는지 왜 계속 발로 소리내고 서로 스트레스 주는지 잘 이해가 안갔었다. 그래도 난 시험볼때도 소음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꾹 참고 문제를 풀었다. 수의대생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인천대 컴공다니던 애는 인강 결제만 하고 계속 유튜브보고 소음만 내다가 자러갔으니 시험 잘봤을리는 없을거다. 나랑 같은 중대였던 선임에게 당한게 있었나? 군 생활중 황당한 일은 읊으면 끝이 없지만. 당시 군생활중 가장 이해 안갔던건 같은 처지에 더 친해질수 있던 사람인데도 이렇게 살던 애들... 맨날 운동하다가 오던 애였는데 병걸린것마냥 문제풀면서 발로 소리를 냈었다. 시험볼때도 이랬으려나. 그 삭막한 환경이 참 아쉽다.
물론 나도 남에게 친절하고 좋은 사람은 아니었고, 좋은 선임은 절대 아니었다. 내 선임과 있었던 일 때문에 난 인수인계 하고싶지도 않았고, 나중에 간부가 가르치면 되겠지 이 생각으로 대충 넘기고 말았다. 실제로 이래도 일하는데 지장은 하나도 없었다. 성격도 순한 후임이라서 그냥 가르칠 때 잘 못하는건 안가르쳤다. 선임이 나만 있는건 아니기도 했고, 원래 후임한테 쓰라고 시키던 노트, 옛날 전역자들 명단이 쓰여있던 컵 이런건 꼴보기 싫어서 다 버렸다. 병사가 하는일이 결국 잡일이라 이래도 큰 지장이 없다. 군생활에 책임감 있는건 좋지만. 자기가 하는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병사는 아마 모자란 사람일거다.
연예인들 군생활하면 아마 군악대로 뺄거고 실제로 공연 온 아이돌을 한번 본적이 있다, 인사계원이랑 행정병은 학력 좋은 사람, 사교성 좋은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하더라. 아무리 군생활 모르는 사람이라도 전입 초기에 정치인 가족, 군인가족 있냐고 물어보는 이유가 짐작이 될거다. 모든 남성이 20대 초반에 의무적으로 행하는 병역의무인데, 예전보다 나아진거라고 하지만. 20대 초반에 이런 집단을 접해야 된다는것이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게 아닌지.
## 3
사실 부끄러운 글이다. 학교는 2학기째 다니고 있고, 지난 학기에 장학금도 받아서 약간 여유있는 환경이 되었고 다른 시험을 치뤄볼 예정이기도 하다.
사실 사람을 많이 접하다보면 어디부터가 문제였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처음부터 사교성도 좋고 요령이 있는 사람이면 내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결국 사회지능도 학습되는 것이라서…
다만 한국이라는 집단 자체가 이상한 경향이 있다고 느꼈다. 점점 원칙도 없어지고, 글솜씨가 부족해서 설명하기엔 부족하지만 정말 이상하다. 점점 더 목소리 큰 사람, 기 센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것 같고, 그런 상황에서 나와 같은 사람은...
오랜 시간의 경험과 내 나름대로 세상 돌아가는걸 보면서, 그리고 문화를 보면서 느낀것은 내 자신이 이 집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것, 오랜 시간동안 남아있어도 내가 영원히 이방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살겠지만. 멀리 가고싶다. 내 성품 자체가 악인은 못 될 사람이니까 좋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만약 답답한 상황만 이겨낸다면 다시 생각이 바뀔 수 있을까. 나름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나름이라는 말이 붙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 이 상황에서 다시한번 벗어날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한번 느끼는게 있다.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세명정도 있었고, 한명은 아주대공대 다니는 선임, 한명은 중대 의대다니는 동기지만 형이 있었다. 다른 한명은 후임이었고...
의대를 편입해서 갔었다고 했는데 계속 앉아서 공부하던 스타일이 지금은 이해가 간다. 다만 내가 어디까지 할수 있을지는. 실패를 해도 의미있는 도전이 되겠지만 실패는 하지 말아야 된다. 이미 나는 실패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배수의 진을 친 상황이 된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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